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변증에 관한 학문적 글을 지속적으로 정리합니다.
또한 타종교의 교리적 중심 사상을 기독교 관점에서 심도있게 정리하였습니다.
신학자이며 목회자로서 기독교 변증과 관련한 칼럼들이 함께 올려지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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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1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훌륭한 인물로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마 11:11). 세례 요한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예언자로서, ‘메시아가 오시면 악한 사람들을 모두 불로써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메시야의 사역에 대해서 유대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말씀은 선포했습니다.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 3:8-10).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이러한 가시적인 심판 사역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들어보니,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메시아 사역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세례 요한이 기대하였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인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서, 예수께서 진정한 메시아가 되심을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
그 때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아 예언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사역이 메시아 사역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마 11:5). 이사야 35장과 6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
그리고 곧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아주 인상 깊은 말씀을 던져주셨습니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11:6). 이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것은 세례 요한에게 주는 예수님의 부드러운 경고와 도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구원받는데 실패하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바로 이해하고 믿음에 굳게 서라는 도전의 말씀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도전의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의 관점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이 심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과 영생의 축복이 주어졌지만, 그 말씀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하나님의 엄중하신 심판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이러한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함을 부드럽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11:6). 이 예수님의 도전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잘못 이해해서, 이 복음을 나의 꿈을 이루고 내 사업의 번영을 꿈꾸는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복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축복과 번영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곳에는 걸려 넘어질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제자도의 삶을 강조하는 데는 걸려 넘어질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오해하여, 예수 믿는 삶이 걱정, 근심 그리고 고통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를 실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나의 죄인됨을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복음적 삶을 살기로 작정할 때에는 장애물이 많습니다. 때로는 고통과 고난이 찾아오고, 매일같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대로 사는 삶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과 성령님의 통치 속에서 사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경제적 연건 속에서 보다 큰 신앙의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는 영적인 안목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들어보니,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메시아 사역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세례 요한이 기대하였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인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서, 예수께서 진정한 메시아가 되심을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
그 때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아 예언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사역이 메시아 사역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마 11:5). 이사야 35장과 6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
그리고 곧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아주 인상 깊은 말씀을 던져주셨습니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11:6). 이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것은 세례 요한에게 주는 예수님의 부드러운 경고와 도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구원받는데 실패하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바로 이해하고 믿음에 굳게 서라는 도전의 말씀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도전의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의 관점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이 심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과 영생의 축복이 주어졌지만, 그 말씀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하나님의 엄중하신 심판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이러한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함을 부드럽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마11:6). 이 예수님의 도전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잘못 이해해서, 이 복음을 나의 꿈을 이루고 내 사업의 번영을 꿈꾸는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복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축복과 번영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곳에는 걸려 넘어질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제자도의 삶을 강조하는 데는 걸려 넘어질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오해하여, 예수 믿는 삶이 걱정, 근심 그리고 고통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를 실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나의 죄인됨을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복음적 삶을 살기로 작정할 때에는 장애물이 많습니다. 때로는 고통과 고난이 찾아오고, 매일같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대로 사는 삶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과 성령님의 통치 속에서 사는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경제적 연건 속에서 보다 큰 신앙의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는 영적인 안목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